아!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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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양시간 역사강의 시간에 처음 접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고 말했던 카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에 콜링우드는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다라는 것 역시 오늘의 의미로 살려내어야 한다는 말로 다가옵니다. 그만큼 우리는 돌이켜 봐야 할 역사를 무덤에 묻고 돌이켜보지 않으려고 하는 중증망각증세가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우리의 오판과 착각이 얼마나 참담함을 주는지 우리에게 반복된 흑역사가 있습니다.

때는 선조 23.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교섭을 청하여 명나라와 사대외교를 하고 싶어합니다. 이에 조선조정에서는 오랜 논의 끝에 1590년에 일본의 요구에 대한 응대와 더불어 일본 내의 실정과 히데요시의 저의를 살필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그리고 허성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하여 일본에 파견하게 됩니다.

1591년 음력 3월 통신사 편에 보내온 히데요시의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문자로 표현되듯 그 침략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통신사와 부사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당시 서인을 대표하였던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합니다. 반면 동인을 대표하였던 김성일은 이에 반대 그러한 정황이 없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조정의 임금과 신하들 간에 의견이 분분해 집니다. 동인인 허성마저 황윤길의 견해를 옹호했지만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인세력이 백성이 동요하면 자신이 향유하던 권력의 변화를 두려워하여 조정은 김성일의 의견을 쫓게 됩니다. 조선 조정은 결국은 김성일의 의견을 쫓아 각 도에 명하여 성을 쌓는 등 방비를 서두르던 것마저 중지시키기까지 합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황망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 아닙니까? 마치 타조가 천적에게 도망가다 지치면 숲에 얼굴을 묻고 위기를 피하 듯 하는 코메디 같은 태도 아닐까요.

우리는 내부의 이유, 자신의 기득권의 울타리를 높여 결국 주변을 보지 못해 스스로 그 안에서 고사당하는 비극을 경험한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때 비극을 예약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류성룡은 김성일을 그의 저서 징비록에서 김성일 역시 일본의 침략의지를 간파하였으나, 괜한 말로 조정과 신민을 동요케하고 싶지 않았음으로 거짓으로 임금께 보고하였고, 통신사 황윤길을 꾸짖었다고 김성일을 두둔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유성룡과 이항복은, 지나친 전쟁 걱정으로 오히려 민심이 동요할 것을 염려하여 김성일이 본의 아니게 허위(?)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왜 그 이후 김성일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어떠한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을까요? 심지어 김성일은, 유성룡에 의해 이순신이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발탁 임명되는 것에 대해 이순신의 경험이 모자라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기까지 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침략을 경고한 오억령은 파직을 당하고,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조선이 전혀 준비 없이 왜에 의해 처절히 유린당한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또한 개전 초기에 왜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왜 정병이 아니라 대부분 의병이었을까요?

결코 유성룡의 견해를 그대로 받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실상 사실 그렇다하더라도 준비하지 못한 조선 조정의 무유비무환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능의 죄. 그 죄의 무서움은 공멸을 불러옵니다. 이런 면에서 무능은 전쟁보다 무섭습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전라도에서 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군량을 비축하고, 수군을 조련하고, 총포와 전함을 정비하고, 거북선을 만들고... 무엇보다 군자금마저도 거의 스스로 마련할 정도로 이순신은 헌신한 장수였습니다. 그 당시 많은 부하장졸들과 지역 주민들이 반발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전쟁 준비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왜 우리만 이렇게 개고생하게 만들고 있냐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그 많은 불만, 반발, 저항에 굴하지 않고 착실하게 일본의 침략에대비합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안목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순신의 장기 중의 하나는 척후병, 탐색병을 지속적으로 운용, 심지어 적군에도 스파이를 심어 공격해오는 배의 수, 적장까지 다 파악하고 용의주도하게 대비한 것입니다.

사심을 버린 유비무환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를 그의 전사는 웅변합니다. 그에 의해 결국 바다를 지켜냈고 그의 죽음으로 전쟁도 끝나게 됩니다.

97IMF 사태가 발생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몸으로 큰 충격을 경험한 IMF세대를 낳았습니다. 그 열매로 중산층의 급격한 감소 빈부격차의 확대로 그 그림자는 지금까지 드리워져 있습니다. 당시의 원인을 분석한 것 가운데 경제계의 일반적 시각은 외부충격이 겹치기는 했지만, 핵심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YS정권은 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주영과 현대그룹을 괘씸하게 여깁니다. 그리하여 YS 정권은 현대그룹 주력 업종들에 대한 경쟁사들의 대대적인 경쟁적 중복투자를 허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입 급증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YS정권은 OECD 가입을 위해 원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정책을 씁니다.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소진되어 갑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거대한 중복과잉투자 상태였고, 원화 환율은 체력에 비해 과도하게 고 평가된 상태였고, 그 결과 외환보유고는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장을 해제한 채, 성문을 활짝 열고 도적을 맞이한 셈이었습니다.

내 안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도적을 살피지 못한 결과입니다.

오늘 이 무주공산의 권력의 정상을 향해 정치지도자들이 달려갈 때 무덤의 이순신이 깊이 그리워집니다. 다시 그를 살려내어 오늘의 역사 현장으로 세우고 싶은 것은 그의 유비무환정신과 실행의지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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