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플러스로 초대합니다.

emko 0 109

심리학자들이 만든 스트레스 저울이라는 지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스트레스 지수가 도합 200점에 도달하면 사람이 쓰러진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사망하면 100, 병들면 53, 해고당하면 50, 이혼하면 73, 별거하면 65, 가족이 사망하면 63점 등등. 위의 나열 항목을 보면 인생자체가 스트레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기죽은 남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남자들의 기가 죽은 이유는문제의 차를 마셨기 때문이랍니다. 구기자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남자들이 구기자 마시고구겨져서 기죽은 남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가 죽어 있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을 하던 한 아내가 어떤 것을 사 먹였는데, 남편의 기가 펴졌다고 합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피자랍니다. 구기자 마시고 기가 죽었던 남편이피자먹고 기를 펴게 되었답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불안한 직장생활, 위태로운 사업, 어려운 학교생활, 힘든 인간관계, 여러 가지 경제 문제로, 육체의 질병으로 얼굴에 생기를 잃고 좌절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무기력해져서 자신을 비관하는기죽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기죽는다는 것은 희망이 죽는다는 말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그걸낙망이라고 합니다. 우리말 사전에 보면낙심(-떨어질 락 -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낙망(-떨어질 락 -바랄 망)’이란희망을 잃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솨하흐입니다. 이 뜻은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온갖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이들에게 먹일피자는 없는 걸까요?

 

당신의 삶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플랭클(Victor Frankle)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 의사로서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패전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1944년 겨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기를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가족과 함께 지내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를 아무런 소식 없이 넘기자 많은 사람들이 그해 겨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플랭클은 묻습니다. 마음에 분명한 희망을 가진 사람, 분명한 기다림이 있는 사람, 사랑하는 애인이나 아내,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 돌아가서 자신이 꼭 이뤄야할 일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그는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실하게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묻습니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 사는 것도 아니요 오직 희망으로 산다. 오직 기다림으로 산다고 말하였습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나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런 희망을 먹고 기죽지 않고 살려면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모든 상황이 절망으로 다시 찾아와도 전천후적인 희망을 봐야 합니다. 성경 시편 424절에서 어떤 사람이 기죽은 이유는,“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그는 과거 잘나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때가 좋았는데 어쩌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민생활, 유학생활이 힘들어질 때마다 과거 한국에서 잘 나가던 때를 생각하며 그 때가 좋았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과거 결혼하기 전에 알았던 남자를 생각하며 그 남자도 괜찮았는데를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부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때 그 대학이라도 갈 걸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과거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 가 과거에 대학입시에 낙방한 것을, 과거 사업에 실패한 것을, 한 번 결혼한 것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과거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다릅니다. 과거와 현재를 중요시하여 거기에 얽매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갈마리라는 교리로여전생의 죄 값대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고 하여 사람들을 운명에 굴복하게 만듭니다. 불교에서는열반(涅槃)’을 가르칩니다. 열반은촛불을 끄듯이 꺼진다는 뜻으로, 욕망을 완전히 종식시키면 인간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마치 두통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현실을 도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향락주의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 을 써서라도 망각해 버리자. 술을 마시든지, 쾌락에 빠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잊어버리고 넘기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과거 지향적인 사람에서 미래 지향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과거를 묵상하며 안타까워하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절대희망을 만나고 나니 그가 누리던 로마 시민권과 그동안 배웠던 학문과 목숨처럼 여기던 삶의 기준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13절과 14절 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아가노라.”이처럼 사도 바울은 과거보다 미래의 영원한 나라 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부인할 수 없는 희망의 절대 실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전천후적인 희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지기

박인용 월드와이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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